나는 누군가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한다. 정확히 말하자면 모르는(혹은 잘 알지 못하는) 남성과의 눈싸움을 싫어한다. 우리가 동물이던 시절부터 눈을 마주치고 서로 노려보다가 한쪽이 시선을 피하는 것으로 막이 내리는 조용한 싸움은 계속되어왔다. 그런데 나는 유독 동물이던 시절의 습성이 지독히 남아있는지, 그러한 상황에서 눈을 피하면 패배감 비슷한 것에 시달린다.
뭐, 딱 까놓고 말하면 그러한 동물적 맥락에서는 (현대사회에서도 여전히) 눈빛을 피한다는 것은 패배한 것이 맞다. 그런데 이 현대사회의 폭력을 금지하는 규칙이 이러한 승패에의 왜곡을 가져왔다. 현대사회에서 동물적인 격투를 벌이는 경우 제재를 받는다. 그리고 종종 한순간의 폭력이 (비록 싸움에서는 이긴다고 하더라도) 많은 것을 잃는 결과를 불러온다. 그 때문에 상대방이 두렵지 않더라도 그 페널티가 두려워 싸움을 피하게 되고, 평화가 유지된다.(그리고 그러한 규칙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인격 내에 '내면화'되어 내재적인 성향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그런데 종종 그러한 페널티 때문에 자기보다 동물적으로 약한 자의 시선을 피하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나( 그리고 나와 같은 부류의 사람들)는 그 상황이 너무나도 싫다. 나를 쳐다보며 싸움을 거는 (약해보이는) 상대에 대한 분노와, 동시에 싸움이 두려워 눈빛을 피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자기혐오가 치밀어 오른다. 그리고 싸움을 피한 자신의 모습 때문에 상처입는다.
그러한 것 때문에 분노하고, 상처까지 입는다는 것은 바보같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원시시대에 태어났으면 힘의 서열에 복종했을 것 같은 나의 본능이나 인격은 그러한 상황이 꽤나 괴롭다. 경우는 조금 다르지만, 싸움이 싫어 사람이 없는 벽지로 숨어들어가서 살면서도 상대방이 싸움을 걸어오면 도저히 지나갈 수 없어했던 옛날의 무인들을 나는 이해한다. 그들의 내면 속에서도 동물의 호전성과 인간적인 (평화로운) 삶에의 바람이 동시에 존재했을 것이다.(그리고 그들 시대에서도 역시 폭력에 대한 금지가 존재했을 것이다.) 그 조화할 수 없는 두개의 방향성. 그들은 조화를 포기하고 충돌상황 자체를 피해서 숨어들어간 것이리라.
본능적인 부름이 강하고, 그러한 강한 본능을 발현시킬 상황에 있지 않으며, 상황에도 불구하고 부름을 관철할 능력이 없다면, 마음을 바꾸어야 한다. 앞으로도 세속에서 살 사람인 나로서는 세속에의 도인이 되고 싶다. 웬만한 일은 웃어넘길 수 있고, 여유있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그러한 사람. 불필요한 충돌에서 자신을 상처입히지 않는 사람.
나의 가장 큰 바람은 늘 '마음 편하게 사는 것'이었다. 그런데 한살을 더 먹을 수록 내 꿈이 얼마나 큰 것이었는지 실감하게 된다. 스스로를 위해 기도해본다 - 부디 꿈이 이뤄지기를.
- 2009/06/28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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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덧글수 : 2







덧글
쯔이 2009/06/29 04:02 # 답글
너랑 눈싸움.. 하니까 과거 법오의 누군가가 생각나는군...ㅋ 부디 마음 편하게 살길.
Fernweh 2009/06/29 11:56 #
때렸으니까 됐음 ㅋㅋㅋㅋ